조선왕계보9 - 숙종 가계도로 보는 송시열과 환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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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의 진짜 모습

숙종하면 장희빈이나 인현왕후 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혹은 환국으로 피바람을 일으킨 변덕스러운 왕으로 아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숙종의 진면목은 당대 최고 권력자, 80대의 송시열을 20대 왕이 단칼에 숙청하며 조선의 권력 지형을 한 방에 뒤집은 정치력에서 찾아야 한다.


조선시대 모든 왕이 완벽한 정통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가. 또 정통성을 갖췄다고 해서 강력한 왕권이 뒤따라 오는 것일까.


먼저, 강한 왕권은 정통성에서만 오진 않는다. 단종만 봐도 적통이었으나 결국 정치력에서 밀렸다. 하지만 개인의 정치력이 있다면 다른 이야기다. 조선 역사상 보기 드문 3대 적통 계승자 숙종을 한 번 살펴 볼까 한다.


숙종은 할아버지 효종, 아버지 현종을 이은 정실 소생 외아들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원자였던 그는 14살에 즉위해 수렴청정조차 건너뛰고 친정을 실시했다.


왜 그랬을까. 그 누구도 숙종의 친정을 막을 수 없었던 까닭은 숙종의 정통성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장렬왕후, 명성왕후 두 대비와 서인 외척들이 버티고 있었지만 숙종의 완벽한 왕권에는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다. 이처럼 숙종의 왕권은 출발부터 '무결점'이었다.


할아버지 효종도 아버지 현종도 쉽사리 건드리지 못했던 인물이 있었다. 서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사실상 조선 정치를 뒤에서 좌지우지했던 송시열이다. 숙종 즉위 당시 송시열은 이미 만 67세인 노인이었지만, 그 영향력은 젊은 왕에게도 부담스러웠다. 경신환국 이후 서인 정권이 기세등등했고, 송시열은 고향에 머물면서도 국정을 흔들 정도의 위세를 떨쳤다.


어린 숙종이 이를 그대로 뒀을까. 정답은 ‘아니오’다. 숙종은 29세의 나이에 83세의 송시열을 단호하게 사사했다. 이는 단순히 한 대신을 처벌한 사건이 아니다. 당시 모든 권력의 정점에 있던, 왕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송시열을 직접 제압하며 왕권의 실체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것이다.

환국은 숙종의 정치력을 보여주는 상징

송시열을 제거하며 왕권의 우위를 선포한 숙종은 이후 환국 정치를 자신의 도구로 삼았다. 첫 환국 9년 뒤인 1689년, 기사환국을 통해 서인을 대거 숙청하고 인현왕후를 폐위, 남인을 재등용했다. 피바람이 부는 정국 속에서 서인과 남인을 번갈아 숙청하고 등용하며 당파를 완벽하게 장악했다.


이 게임의 진짜 승자는 숙종이었다. 그는 장희빈을 중전으로 앉히는 등 왕권을 앞세워 정국을 쥐락펴락하며 권력의 중심을 자신에게로 완전히 집중시켰다. 강력한 왕권으로 무장한 숙종은 단지 신하를 제압하는 데만 칼날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광해군 때 시작된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조세 체계를 사실상 완성했고, 상평통보를 본격적으로 유통시켜 조선의 화폐 경제 기반을 다졌다. 단종 복권을 포함한 과거사 정리 작업까지 단행했다. 이는 완벽한 정통성에서 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신하들의 반발이 있을 법한 정책을 실시하면서, 자신의 왕권을 더욱 공고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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