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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고려왕계보를 보기 앞서
100년 남짓 이어졌던 무신 정권의 역사. 그 긴 시간 속에서 가장 오랫동안 권좌를 지켰던 인물은 과연 누구였을까? 정답은 바로 최충헌의 아들, '최우'다. 그는 무려 30년이나 집권하며 무신 정권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최우는 뼈대 굵은 무신 집안 사람이었지만, 의외로 글과 문장에도 아주 능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무식하게 힘만 쓰는 무인보다는, 머리 좋고 글 잘 쓰는 문신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등용하는 걸 즐겼다.
이때 등용되어 성장한 새로운 지식인 계층이 바로 '사대부'다. 우리에게 교과서적으로 익숙한 대문호 '이규보' 역시 최우의 전폭적인 후원 덕분에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낼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반전이 하나 있다. 최우가 마음에 두었던 다음 후계자는 원래 '최씨'가 아니었다는 사실, 혹시 들어본 적 있는가? 최씨 정권에서 최씨가 아닌 후계자라니, 대체 무슨 사연일까?
이번 고려 왕 계보도를 통해 과연 누가 그 '비밀의 후계자'였는지, 그 내막을 함께 파헤쳐 보자.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지난 포스팅에서 다뤘던 최씨 정권의 탄생 배경을 먼저 훑어보고 온다면, 이번 내용이 훨씬 더 재밌게 읽힐 것이다.
최우의 후계자 '김약선'
위 계보도의 왼쪽을 한번 살펴보자. 최우의 가계도와 그 아래로 이어지는 아들들의 이름이 보일 것이다. 우리가 역사 시간에 배웠듯, '최우 → 최항 → 최의'로 이어지는 최씨 가문의 장기 집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최우가 마음속에 품었던 '진짜 후계자'는 원래 최씨가 아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그 비운의 주인공은 바로 '김약선'이라는 인물이다. 몽골과의 전쟁 당시 귀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 김경손 장군의 동생이기도 하다. 워낙 능력이 출중했던 터라, 최우는 일찌감치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어 두고 있었다.
반면 친아들이었던 '최항'은 후계 구도에서 아예 배제되어 있었다. 기생에게서 얻은 자식이라 출신이 미천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전라도 순천 송광사로 보내져 승려 생활을 하고 있었다.
후계자의 최후
그 사이 김약선은 승승장구했다. 최우의 딸과 결혼해 탄탄한 입지를 다진 것은 물론,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은 훗날 '원종'과 혼인해 '충렬왕'을 낳았다. 무신 정권의 최고 권력과 고려 왕실을 양 어깨에 짊어진, 그야말로 대단한 위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비극으로 끝났다. 김약선의 부인(최우의 딸)이 집안의 종과 간통을 저질렀는데, 이를 숨기기 위해 아버지 최우에게 남편을 모함하는 거짓 고변을 한 것이다. 최우는 딸의 말을 그대로 믿었고, 결국 김약선에게 사약을 내렸다.
딱 한 발짝만 더 내디디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데 말이다.
역시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높은 곳에는 바람이 차고 거세게 부는 법인가 보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저 비난이나 받고 끝났을 스캔들이었을지 모르지만(심지어 본인은 죄가 없없다), 권력의 정점에 너무 가까이 있었던 죄로 김약선은 그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