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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고려왕계보를 보기 앞서
어느덧 고려의 역사도 중후반기를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다. 무신정변이라는 거대한 파도로 인해 문벌 귀족들은 몰락했고, 바야흐로 무인들의 세상, 즉 '무인 천하'가 도래했다.
이번 시간에는 무신 정권의 꽃(?)이라 불리는, 아니 어쩌면 가장 강력했던 시기인 '최씨 정권'이 드디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과연 최충헌은 어떤 과정을 통해 권력을 손에 쥐었을까? 그리고 그의 등장은 위태로운 고려 왕실에 어떤 파장을 불러왔을까?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확인해 보자.
참고로, 무신정변이 일어난 배경과 과정은 지난 포스팅들에서 자세히 다뤘다. 전체적인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앞선 글들을 꼭 먼저 읽고 오는 걸 추천한다. (고려왕계보 6)
이의민의 등장
무신들의 칼날에 왕이었던 의종이 폐위되고, 명종이 그 자리에 올랐다. 이후 무신 정권에 반기를 든 '김보당의 난'이 일어나면서 의종 복위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이의민은 복위 운동의 상징적 중추가 되는 의종을 직접 처단하며 중앙 세력가들의 눈에 확실히 띄게 되었다. (천민 출신 이의민은 심지어 의종의 허리를 반으로 접어 처단했다)
하지만 폐위된 왕을 시해했다는 사실은 이의민에게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었다. 겉으로는 복종했지만, 사람들의 속마음은 달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폐위된 왕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신하가 된 자가 왕의 허리를 접어 부러뜨려 죽일 수가 있어..."
게다가 이의민에게는 출신이라는 꼬리표도 따라다녔다. 어머니가 천민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당시 고고한 문신들은 물론이고, 힘의 논리에 따르던 무신들조차 천민 핏줄인 이의민이 윗자리에 있는 걸 몹시 고깝게 여겼다.
엘리트 문신 출신 무신 '최충헌'
그런데, 이 천민 출신 최고 집권자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최충헌'이다.
최충헌은 무신 정권의 상징 같은 인물이지만, 놀랍게도 그의 뿌리는 문신 가문이었다. 그것도 5품 이상 고위 관료의 자제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 '음서제'를 통해 관직에 진출한, 이른바 '엘리트 금수저'였다.
즉, 이의민이 천민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딛고 힘으로 정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면, 최충헌은 빵빵한 가문 배경을 등에 업고 시작한 준비된 권력자였던 셈이다.
자연스럽게 반(反)이의민 세력은 명분과 배경이 확실한 최충헌을 중심으로 뭉쳤고, 이를 기반으로 정권을 탈환할 수 있었다. (흔히 '비둘기 사건'이 이의민 제거의 원인이라고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폭발하기 직전의 도화선이었을 뿐이다.)
집권에 성공한 최충헌은 거칠 것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 유지에 방해가 된다면 왕조차 가만두지 않았다. 그가 폐위시킨 왕만 무려 두 명(명종, 희종)이나 된다. 그는 '교정도감'이라는 기구를 설치해 모든 권력을 독점했고, 이후 4대에 걸쳐 이어지는 최씨 정권의 시대를 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