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계보6 - 인종, 의종 가계도와 '서경천도운동'과 '무신정변'의 원인 알아보기

👑 역대 왕조 가계도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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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고려왕계보를 보기 앞서

지난번 계보도 이야기를 통해, 문벌 귀족의 상징이었던 이자겸이 난을 일으켰다가 결국 진압당했던 과정을 확인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이자겸 한 사람의 자멸로 끝나지 않았다. 고려의 정치 판도 전체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권력의 중심에서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던 '인주 이씨'. 그들이 사라진 거대한 빈자리를 과연 누가 차지할 것인가? 바야흐로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 셈이다.


이 자리를 두고 전통의 강호인 문벌 귀족 중심의 '개경파'와, 새롭게 떠오르는 신진 세력 '서경파'가 정면으로 맞붙게 된다.


흥미로운 건 이 승부가 끝난 뒤다. 승자가 결정된 후에 또다시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권력의 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가계도를 따라가며 함께 확인해 보자.

인종, 의종 그리고 묘청의 난과 무신정변

고려 시대를 통틀어 가장 다이내믹했던 시기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코 오늘 다루는 이 시점이 아닐까 싶다. 이자겸이 빠져나간 정치 권력의 공백은 생각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일단 인종과 결혼했던 이자겸의 딸들은 폐비가 되어 쫓겨났다. 한마디로 인주 이씨 가문이 권력의 핵심부에서 완전히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러자 그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여러 세력들이 치열하게 맞붙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건 신라 왕족 출신이자 전통의 명문가인 '경주 김씨'였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그리고 그 공동 저자이자 정몽주의 직계 조상인 정습명이 이 세력의 핵심이었다. 알기 쉽게 '보수파'로 볼 수 있는 이들을 우리는 '개경파'라 부른다.


이에 맞서 새롭게 성장한 세력이 바로 '서경파'다. 왕인 인종도 개경파가 너무 커지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정지상이나 묘청 같은 서경파 인물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들은 수도를 서경(평양)으로 옮기자고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인종이 이를 거부하자 결국 반란을 일으키고 만다.


이게 그 유명한 '묘청의 난', 혹은 '서경 천도 운동'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문신이었던 김부식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가 반란을 진압했다. 덕분에 정국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개경파의 손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눈여겨볼 인물이 한 명 있다. 김부식의 독주에 끊임없이 태클을 걸었던 '윤언이'다. 윤관 장군의 아들이자 김부식의 평생 라이벌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런 견제가 심해지자 김부식은 관직에서 물러나려 했는데, 인종이 은퇴에 조건을 하나 걸었다. 바로 역사서 <삼국사기>를 편찬하라는 것이었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이 장인은 은퇴하고 싶어도 맘대로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지금 삼국시대의 역사를 상세히 알 수 있게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개경파도 세월을 이길 순 없었다. 그들이 나이가 들어 하나둘 물러나자, 의종 시기에 권력의 핵심을 꿰찬 건 다름 아닌 '환관과 내시' 세력이었다.


사실 의종에게는 믿을 만한 측근이 절실했다. 수차례의 반란으로 왕권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즉위 전, 어머니 공예왕후가 의종 대신 동생 대령후를 왕으로 세우려 했으니 의종의 권위는 바닥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바로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보좌하는 환관과 내시들을 키우는 것이었다.


흔히 환관과 내시를 '왕의 손발'이라 부른다. 왕에게 올라가는 모든 상소는 이들을 통하고, 왕의 명령 또한 이들을 거쳐 밖으로 나간다. 문고리를 꽉 쥐고 있으니, 아무리 지위 높은 대신이라도 견제 세력이 없는 이들에게 쓴소리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왕 주변에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간신'들만 남게 되었다. 또한, 왕의 곁에 머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왕을 호위하는 '친위대'의 하급 무사들이 이때부터 정치 세력화되기 시작했다.

무신정변의 기반은?

우리는 흔히 무신정변의 원인을 문신들의 '멸시' 때문이라고 가볍게 배우고 넘어가곤 한다. 하지만 하급 무사들이 이미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해 있지 않았다면, 무신정변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신정변을 주도한 3인방의 직책을 뜯어보면, 복잡했던 퍼즐 조각이 딱 맞춰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 이의방: 견룡행수 (국왕 친위대 '견룡군'의 대장)
- 이고: 견룡군 산원 (국왕 친위대 '견룡군'의 하급 무관)
- 정중부: 상장군 (고려군 1인자)


실질적인 주모자는 왕의 코앞에 있던 이의방과 이고였다. 그리고 반란을 이끌어 줄 간판, 즉 '얼굴마담'으로 섭외한 인물이 바로 군부의 최고위직인 '정중부'였던 셈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무신정변은 단순히 멸시받던 무신들이 욱해서 일으킨 우발적인 사건이 결코 아니다.

이자겸의 난부터 시작된 정치 지형의 지각 변동이 결국 '환관과 내시'의 득세를 불렀고, 왕 주변의 하급 무사들까지 정치 세력으로 키워냈다. 바로 이 힘이 바탕이 되었기에 무신정변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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