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고려왕계보를 보기 앞서
지난번 계보도 이야기를 통해 문벌 귀족이 본격적으로 무대 위에 오른 게 '현종' 때부터였다는 걸 확인했다. 고려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이 이들의 성장과 함께 찾아왔다는 점도 꽤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인주 이씨 가문의 힘이 세진다고 해서 왕권까지 덩달아 튼튼해지는 건 아니었다. 원래 힘이란 게 한쪽으로 너무 쏠리면 결국 탈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번엔 인주 이씨와 왕실 사이의 팽팽한 기싸움, 그중에서도 '이자의의 난'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한번 풀어볼까 한다.
고려왕계보도-4(순종,선종,헌종,숙종)
고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문종. 그의 장남인 '순종'이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즉위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다행히 동생 선종이 바통을 이어받아 당시 잘나가던 고려를 무난하게 이끌었지만, 진짜 문제는 선종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였다.
선종의 뒤를 이어 아들 헌종이 왕좌에 올랐는데, 당시 나이가 고작 11살이었다. 위 가계도를 한번 보자. 단순한 검은 실선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색깔들이 눈에 띌 것이다. 이건 인주 이씨 가문이 왕실과 얼마나 촘촘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다.
헌종이 왕이 되자마자 조정은 차기 '후계 구도'를 놓고 시끄러워졌다. 어린 왕이 버티고 있는데 왜 벌써 다음을 걱정했을까? 그건 헌종의 상태가 꽤 위태로웠기 때문이다.
11살 어린 나이라 후사가 없는 건 당연했고, 워낙 병약해서 언제 요절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던 탓이다.
이자의의 난인가, 계림공의 난인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정에서는 자연스럽게 세력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기 대권을 두고 크게 두 세력이 팽팽하게 맞붙은 것이다.
한쪽은 "그래도 헌종의 동생인 '한산후 윤'이 핏줄이니 적합하다"는 입장이었고, 다른 한쪽은 "지금같이 위태로운 때는 어린 왕족보다 이미 장성해서 능력이 검증된 숙부 '계림공 왕희'가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인맥을 좀 더 파고들면 재미있는 사실이 보인다. 한산후 윤의 어머니가 바로 그 인주 이씨 가문의 실세, '이자의'의 딸이었다. 즉, 한산후 윤은 이자의가 작정하고 밀고 있는 왕 후보였던 셈이다. 반면 숙부 계림공은 이미 그 자체로 든든한 정치 세력을 거느리고 있었고, 인주 이씨 가문과는 사사건건 부딪히던 사이였다.
역사책인 <고려사>에는 이자의가 먼저 난을 일으켰고, 계림공이 이를 정의롭게 진압했다고 적혀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승자의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헌종은 숙부인 계림공(숙종)에게 왕위를 넘겨주게 된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이자의의 난이란 결국 계림공(숙종)이 왕좌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가장 강력한 정적이었던 '이자의'를 제거한 사건, 그렇게 이해하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