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계보2 - 경종, 성종, 목종 가계도 알아보기

👑 한국사 가계도 시리즈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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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고려왕계보를 보기 앞서

두 번째 고려 왕 계보도를 펼쳐보기에 앞서, 지난 시간 우리가 봤던 그림을 잠시 떠올려보자. 지난 계보도를 그리면서 의도적으로 연출했던 부분이 하나 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왕 씨'의 나라인지, 아니면 '호족'들의 나라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건국 초기 왕건이 처했던 냉정한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왕건 역시 다른 호족들보다 힘이 '조금 더 센' 호족일 뿐이었다. 그래서 찍어 누르는 강한 통제보다는, 결혼을 하거나 왕 씨 성을 하사하는 유인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달콤한 미봉책의 후유증은 다음 왕들의 왕위 계승 전쟁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오늘은 광종의 뒤를 이은 경종, 성종, 목종의 시대를 들여다보려 한다. 과연 이들의 상황은 어땠을까?

왜 고려 왕실은 '근친혼'을 선택했을까?

자신의 핏줄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호족들이 선택한 최후의 수단은 바로 '근친혼'이었다. 지금의 윤리관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여기엔 그들만의 생존 전략이 숨어있다.


아직 고려 초기에는 망한 나라, 신라의 '골품제' 마인드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왕족은 왕족끼리 결혼해야 급이 맞지"라는 신라식 사고방식이다. 즉, 왕 씨 가문끼리 결혼함으로써 다른 성씨(호족)가 감히 왕권에 섞여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일종의 '순혈주의 방어막'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족보 꼬이는 결혼으로만 나라를 버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혼란을 정리하고 '시스템'을 도입한 왕이 바로 '성종'이다.


이때 성종의 정치 파트너로 등장하는 사람이 '최승로'다. 그는 성종에게 시무 28조을 올린다. 성종은 이를 받아들여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고, 지방에 관리를 파견해 호족들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호족'에게 의존하던 정치가 비로소 '법과 제도' 위로 올라서게 된 것이다.

막장 드라마, 천추태후와 목종

시스템이 정비되나 싶더니, 다시 한번 왕실 족보가 꼬이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의 등장이다.


그녀는 경종의 왕비이자 성종의 여동생, 그리고 목종의 어머니였다. 권력의 정점에 있던 그녀는 '김치양'이라는 외척과 사랑에 빠지는데, 문제는 그 야망이 선을 넘었다는 것이다. 엄연히 왕 씨의 나라에서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김 씨'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 사건은 당시 고려 왕실의 권위가 얼마나 위태로웠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결국 이 드라마 같은 상황은 '강조의 정변'이라는 비극을 불러오고, 아들 목종은 폐위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최후의 승자? 경순왕과 경주 김씨

이 복잡한 와중에 놓치지 말고 꼭 챙겨 봐야 할 인물이 하나 있다. 바로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이다.


경순왕은 천 년 사직 신라를 뒤로한 채 왕건에게 평화롭게 나라를 바쳤다. 왕건은 그런 경순왕의 결단에 고려 왕실과의 혼인으로 화답했다.


앞으로의 계보도에서 '경주 김씨'가 꽤 자주 등장하게 될 것이다. 멸망한 후백제의 후손들은 문벌 귀족 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지만, 신라의 후손들은 피를 흘리지 않고 항복한 대가로 '문벌 귀족'이라는 고려의 최상류층 티켓을 얻었기 때문이다.


흔히 경순왕을 나라를 포기한 무능한 왕으로 묘사하곤 한다. 하지만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자. 지킬 힘도 없는 왕과 나라를 고집하다 멸문지화 당하는 대신, 후손들에게 '강력한 귀족 가문'이라는 튼튼한 유산을 물려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쩌면 경순왕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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