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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려왕계보를 보기 앞서
918년 태조 왕건이 세운 나라 '고려'. 그 질긴 명줄도 이제 서서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세계 최강이라던 몽골 기병의 말발굽 아래서도 끝끝내 살아남았던 고려의 불굴의 생명력, 그 끈기는 놀라움 그 자체다.
하지만 그 생존의 대가는 꽤나 혹독했다. 원나라 황제가 부르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야 했고, 황제의 기분에 따라 왕이 폐위되거나 유배를 가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견뎌야 했으니까.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수많은 외적을 막아내며 다 죽어가던 고려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줬던 영웅, 바로 그 '이성계'의 손에 고려의 촛불이 꺼지게 되니 말이다.
오늘 고려 왕 계보의 마지막 이야기는 고려에겐 구국의 영웅이자, 동시에 나라를 멸망시킨 역적이었던 '이성계'에게 초점을 맞춰볼까 한다.
개혁군주 공민왕의 반원정책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던 원나라 제국도 후계자 다툼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중국 각지에서 반란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그 틈을 타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국했다.
고려에게는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당시 왕이었던 '공민왕'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개혁의 칼을 뽑아 들었다. 원나라에 빌붙어 호가호위하던 '기철' 일파를 숙청하는 것을 시작으로, 몽골풍 관제를 뜯어고치고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매섭게 몰아붙였다.
이때 원래 고려 땅이었지만 배신자들에 의해 원나라로 넘어갔던 '쌍성총관부'를 되찾는 쾌거를 이룬다. 바로 이 전투에서 이성계가 맹활약하며 본격적으로 중앙 무대에 '고려의 젊은 장군'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민왕이라는 걸출한 개혁 군주가 등장했음에도,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너무나 매서웠다. 대륙에서는 원나라와 명나라가 치고받는 통에 '홍건적'이 고려까지 밀려와 행패를 부렸다.
바다 건너 일본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지고 '무로마치 막부'로 넘어가는 혼란기라 지방 통제가 전혀 안 되고 있었다. 그 틈을 타 도적과 해적들이 기승을 부리며 고려 해안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기록을 보면 1350년부터 1389년까지, 약 40년 동안 왜구의 침입 횟수가 무려 394건에 달했다고 한다.
단순히 도둑떼 수준이 아니었다. 규모가 정규군 뺨칠 정도였다. 고려 말 '황산대첩' 당시 쳐들어온 왜구 함선이 500여 척이었다고 하니, 이건 그냥 전쟁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훗날 임진왜란 때 쳐들어온 왜선이 700여 척 규모였다.)
하지만 고려에는 이성계가 있었다. 그는 원나라, 홍건적, 왜구를 가리지 않고 싸우는 족족 승리했다.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불패의 신화'였다. 특히 왜구와의 대규모 전쟁이었던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그는 명실상부한 '구국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 기세를 몰아 이성계는 철령위 설치 문제로 출병한 '요동 정벌군'의 사령관직까지 맡게 된다. 하지만 압록강 위화도에서 그는 유명한 '4불가론'을 외치며 말머리를 돌린다. 바로 '위화도 회군'이다.
나라를 구하던 영웅이, 왕의 명령을 거역한 '역적'으로 바뀌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영웅인가, 역적인가?
여기서 흥미로운 비교를 하나 해보자. 이성계가 무너뜨린 고려 왕은 무려 세 명이나 된다. 앞서 다뤘던 무신 정권의 독재자, 최충헌과 비교해보면 이성계의 '성공한 쿠데타' 이면에 숨겨진 비정함이 더 잘 보인다.
| 비교 | 이성계 (조선 태조) | 최충헌 (무신 정권) |
|---|---|---|
| 폐위시킨 왕 | 3명 (우왕, 창왕, 공양왕) |
2명 (명종, 희종) |
| 결과 | 조선 건국 (역성혁명 성공) |
최씨 정권 (4대 세습) |
| 평가 | 조선의 개창자 | 권신, 반역자 |
이성계의 업적을 볼 때는 '고려 장군 이성계'와 '조선 태조 이성계'를 냉정하게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고려의 입장에서 이성계는 왕을 셋이나 갈아치우고 나라를 훔친, 씻을 수 없는 '난신적자(역적)'다. 하지만 동시에 벼랑 끝에 몰린 고려에 인공호흡기를 달아 생명을 연장해 줬던 유이한 '영웅'이기도 했다.
이 두 개의 자아가 공존하지만, 역사라는 건 본래 균형있는 시선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처럼, 우리는 은연중에 '역적 이성계'의 모습을 '조선 태조'라는 위대한 이름 뒤에 교묘히 숨겨두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기에 우리가 이성계를 단순히 '조선의 건국자'로만 기억하기보다, 그 과정에 있었던 피와 모순까지 꿰뚫어 보는 더욱 날카로운 시선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