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계보1 - 온조왕 가계도로 보는 백제 건국설화의 의문점 (비류설화, 온조설화)

👑 한국사 가계도 시리즈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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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제는 약 2천 년 전 건국된 고대 국가다. 백제 왕실의 초기 가계도는 현재 남아있는 기록의 부족*1과 상충으로 인해 여러 의문점을 제기한다. 특히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타나는 두 가지 건국신화와 초기 왕들의 비정상적인 재위 기간 기록은 백제사 연구에서 중요한 논쟁거리다. 이러한 문제는 초기 백제사의 복잡성과 기록의 한계를 보여준다.

2. 배경

백제는 멸망 시점으로부터 1,300년이 넘게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의 원본 기록은 소실되거나 희미해졌다.*2 또한, 기록된 내용들은 각 시대의 사상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거나 가필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백제 왕계보는 여러 기록에서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


백제의 왕계보를 다룰 때는 기록의 불완전성과 상충되는 내용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는 조선이나 고려 시대의 기록과는 달리, 기록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교차 검증을 요구한다.

3. 전개

백제 초기 왕계보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여러 의문이 따른다.


3.1.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이중 건국신화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첫 부분에는 백제의 건국신화가 등장한다. 고구려에서 내려온 온조가 위례성에 나라를 세웠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비류 설화도 함께 기록한다. 이는 고려 시대에 편찬된 공식 역사서인 「삼국사기」조차 백제의 건국신화가 두 가지라는 점을 인정한 결과다.


어느 설화가 진실인지 당시로서는 알 수 없었기에, 두 가지를 모두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백제의 건국신화가 온조 설화와 비류 설화로 나뉘어 전해진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백제 초기 기록의 혼란을 나타낸다. 이 두 가지 이야기가 공존하는 점은 백제 역사 연구의 복잡성을 보여준다.*3


3.2. 초기 백제왕 재위 기간의 비정상적 기록


백제 초기 왕들의 재위 기간은 지나치게 길게 기록되었다. 온조, 다루, 기루, 개루, 초고, 고이왕의 평균 재위 기간은 47년 에 달한다.*4 이들 이후의 왕들은 평균 재위 기간이 대략 15년에 불과하다. 이처럼 초기 왕들과 이후 왕들의 재위 기간에서 현격한 차이가 나타난다. 이러한 차이는 백제 왕실 계통에 대한 조작 또는 초기 왕들의 재위 기간이 과장되었을 가능성*5을 제기한다. 이는 「삼국사기」 기록의 신뢰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3.3. 온조계와 비류계 왕위 다툼 학설


백제 초기 왕들의 비정상적인 재위 기간 기록과 두 가지 건국신화에 대한 의문점은 특정 학설로 이어진다. 온조계와 비류계가 백제 왕위를 두고 번갈아 다툼을 벌였다는 학설이다.*6 이 학설은 다루왕, 기루왕, 개루왕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루(婁)'라는 글자에 주목한다.


'루'를 비류의 조상인 해부루와 연결시켜, 해부루-우태-비류-다루-기루-개루로 이어지는 '비류계통'이 존재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 학설은 백제 왕실이 건국 초기부터 단일 혈통이 아닌, 두 세력 간의 권력 투쟁 속에서 형성되었을 가능성*7을 제시한다.

4. 결과 및 평가

백제 왕계보에는 여러 모순과 의문점이 존재한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만으로 백제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있다. 백제 초기 역사의 복잡하고 모호한 기록은 현대 학자들에게 중요한 연구 과제를 제시한다.


부족한 기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의문이 던져지며, 그 속에서 다양한 학설과 해석이 제기된다. 이러한 과정은 백제사의 깊이를 더한다. 또한 백제 왕위 계통에 대한 논의는 초고왕계와 고이왕계 등 다른 왕계통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는데, 정리하자면 '모호함'이라는 특징이 고대 백제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1 660년 사비성이 함락될 때 백제 자체의 역사서인 《서기(書記)》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문헌이 불타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2. *2 오늘날 우리가 가장 많이 의존하는 《삼국사기》조차 백제 멸망 후 약 500년이나 지난 고려 시대(1145년)에 승자인 신라의 관점을 바탕으로 쓰였다.
  3. *3 사실 중국의 정사인 《수서》나 《북사》 등에서는 온조나 비류가 아닌 '구태(仇台)'라는 인물을 백제의 시조로 명시하고 있어, 실제로는 '삼중 건국신화'에 가깝다.
  4. *4 전쟁과 전염병이 잦고 평균 수명이 짧았던 고대 사회에서 6명의 왕이 연속으로 40~50년씩 통치했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5. *5 후대 백제 왕실이 고구려나 신라보다 건국 연대를 앞당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대를 늘렸거나, 서로 다른 시기에 존재했던 별개의 집단(예: 고이왕계)을 무리하게 하나의 족보로 이어 붙인 결과로 해석된다.
  6. *6 초기 백제는 한 명의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국가라기보다, 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진씨)과 외래 이주민 세력(해씨, 부여계)이 권력을 나누어 갖는 '도시국가 연맹체' 성격이 강했다. 따라서 세력의 크기에 따라 왕계가 교체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7. *7 반대로 5대 초고왕, 6대 구수왕, 13대 근초고왕, 14대 근구수왕처럼 이름에 '초고'와 '구수'가 들어가는 왕들은 '온조계'로 분류된다. 결국 최종 승리한 온조계(근초고왕)가 비류계(고이왕계)의 역사를 흡수하며 '부여 씨'라는 단일 성씨로 통합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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