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계보14 - 고종 가계도 순종 가계도로 보는 조선황실 속 친일파

👑 한국사 가계도 시리즈 (조선)
[ 펼치기 ]
🧭 네비게이션 로딩 중...

고종, 순종의 가계도를 살펴보기에 앞서

고종은 외세에 저항하려 애썼고 조선 황실은 일제에 맞선 것처럼 회자된다. 친일파들은 나라를 팔아먹은 간신배로, 황실은 마치 저항의 상징처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실제 조선 황실 내부에도 일제에 협력한 인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의 몰락은 단지 외세의 압력 때문만 아니었다. 이성계의 핏줄, 왕실 내부의 배신도 분명히 한 몫 했다. 왜 조선의 황실은 스스로 붕괴의 길을 걸었을까?

왕실의 이름으로 나라를 팔다: 이재면, 이지용, 이준용

이재면*1은 흥선대원군의 장남이자 고종의 친형이었다. 비록 왕위는 동생에게 넘어갔으나 그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그는 대한제국의 고위직을 두루 거치다 나라가 넘어가자 일제로부터 '공족(公族)'의 지위를 받았다. 단순한 협조를 넘어 황실의 자원과 재정이 일제의 통치 기반으로 편입되는 과정에 앞장섰다.


을사늑약에 서명한 '을사오적' 중 하나인 이지용*2 역시 왕실의 핵심 종친이었다. 그는 고종의 숙부인 흥인군 이최응의 손자로, 고종과는 5촌 관계였다. 종친이라는 배경을 방패 삼아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그는 정작 위기의 순간에 일본의 자작 작위를 택하며 늑약에 찬성했다. 왕실 내부의 배신이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 있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에 흥선대원군이 생전에 가장 아꼈던 손자 이준용*3이 있다. 고종의 조카였던 그는 재위 기간 내내 왕위를 노리는 역모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권력 쟁탈전에서 밀려나자 곧바로 일제에 충성을 맹세했다. 그는 일본 육군 장교로 복무하며 식민 체제의 '왕실 귀족'으로서 영광을 누렸다. 외세 침략을 그토록 거부했던 흥선대원군의 손자가 조선 왕실 자가붕괴의 상징이 된 것은 역사의 비극*4이다.

조선 황실엔 독립운동가보다 친일파가 많다

조선 왕실은 오랫동안 민족의 상징이자 국가의 중심으로 여겨졌다. 백성들은 임금이 나라를 수호하고 왕족들이 앞장서 외세에 맞서리라 믿었으나, 현실은 그 기대를 저버렸다. 수많은 황족은 일제가 부여한 작위와 특권을 수용하며 식민 체제의 귀족으로 편입되는 길을 택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독립유공자 서훈이다. 황족 출신으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인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종친은 일제로부터 막대한 은사금과 품위유지비를 받으며 안락한 삶을 이어갔다.*5 반면, 가산을 탕진하며 만주 벌판에서 풍찬노숙했던 독립운동가들 중 황실의 이름으로 싸운 이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온갖 부귀영화와 권위를 누리던 이들이 국가의 존망이 걸린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기득권을 챙긴 사실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매국의 책임을 이완용과 같은 몇몇 신하들에게만 묻는 것은 본질을 흐리는 일*6이다. 국왕과 그 일가는 국가의 최종 책임자로서 그 배신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조선을 무너뜨린 동력 중 하나는 외부의 침략뿐만 아니라 왕실 내부의 철저한 자가붕괴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1. *1 이재면(흥친왕)은 고종의 유일한 친형이다. 경술국치 당시 흥친왕은 "국가를 보존하기 위해 병합에 찬성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기기도 했다. 1910년 병합 이후 일제는 그를 일본 황족에 준하는 '공족'으로 예우하며 매년 막대한 세비를 지급했다.
  2. *2 이지용은 본래 이최응의 아들 이희하의 아들이나, 아들이 없던 당숙에게 양자로 들어갔다. 그는 을사늑약 당시 "나는 원래 친일파다"라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로 매국 행위에 당당했으며, 그 대가로 받은 은사금으로 방탕한 생활을 즐겨 당대에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3. *3 이준용은 일본 망명 시절부터 일제의 비호를 받았으며, 훗날 아버지 이재면의 공족 작위를 계승하여 '이준공'이라 불렸다.
  4. *4 흥선대원군도 쇄국정책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권력욕에 틈만 나면 일본과 결탁해 권력을 차지하려 했다.
  5. *5 작위를 받은 종친 중 이해승(후작)은 당시 16만 8천 엔의 은사금을 받았는데, 이는 현재 가치로 약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이다.

    이처럼 막대한 자본은 해방 이후에도 후손들에게 승계되어 일부 친일파 후손들이 여전히 부유한 삶을 누리는 경제적 토대가 되었다.
  6. *6 이완용이 매국노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다. 이완용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나라를 팔아넘긴 명백한 매국노다.

    하지만 우리가 이완용이라는 이름에만 모든 분노를 쏟아붓는 사이, 그 그림자 뒤에 숨어 일제가 제공하는 막대한 은사금과 작위를 챙기며 평생을 안락하게 보낸 황족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