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가계도 시리즈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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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 하대 흥덕왕 사후, 왕위 계승을 둘러싼 극심한 혼란이 발생했다. 헌덕왕과 흥덕왕 모두 적자를 남기지 못하면서 왕실의 정통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김균정과 김제륭을 중심으로 한 두 세력이 각각 독자적인 권력을 구축했고, 흥덕왕의 사망은 이들의 권력 다툼을 격화시켰다. 결국 김제륭 세력이 김균정을 제거하며 신라는 본격적인 왕위 쟁탈전에 돌입했다.2. 배경
헌덕왕은 재위 기간 중 아들이 없었다. 헌덕왕의 사망 후, 동생인 흥덕왕이 왕위를 계승했으나 흥덕왕 역시 아들을 두지 못했다. 두 왕에 걸친 직계 후계자의 부재는 신라 왕실의 정통성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특히 신라의 왕위 계승은 고대부터 직계 상속이 중시되었기에, 적자가 없는 상황은 차기 왕위의 불확실성을 극도로 높였다. 이는 왕실 내부에 잠재된 권력 투쟁의 불씨를 키우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왕위 계승에 대한 명확한 원칙이나 선례가 부재한 상황에서, 왕족 내 다양한 세력은 각자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권력 장악을 시도할 가능성이 커졌다.3. 전개
흥덕왕 시기 후계자 부재는 신라 정치의 불안정을 심화시켰다. 왕실은 권력 공백에 대한 우려로 가득했고, 이러한 틈을 타 새로운 권력 주도 세력이 부상하기 시작했다.3.1. 균정 및 제륭 세력의 부상
왕위 계승의 불안정성은 김균정과 김제륭 두 왕족의 권력 확장으로 이어졌다. 김균정과 김제륭은 각각 독자적인 지지 기반을 구축하며 차기 왕위 후보로 떠올랐다.* 김균정 지지 세력: 김균정의 아들 김우징*1을 필두로, 무열왕계 후손인 김양*2과 김예징 등이 세력을 결집했다.
* 김제륭*3 지지 세력: 김명*4, 이홍(利弘) 등이 김제륭을 지지하며 김제륭의 세력을 강화했다.
이러한 양상은 왕실 내부에서 왕위 계승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했다. 신라 정국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