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재가 왜 여기 있는가’
역사를 좋아하지만 박물관 관람이 늘 재미있지만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어디를 가도 비슷한 도자기나 불상, 따분한 전시 형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생각이 바뀌었다.
유물 자체보다, “왜 이 자리에 이 유물이 있을까?”를 고민하면서부터다. 그런 질문을 품고 찾은 장소가 바로 도쿄국립박물관이다.
단순한 관광이나 미술 감상이 목적이 아니라,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반출된 문화재들이 지금 어떻게 전시되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박물관은 도쿄 우에노 공원 내에 위치해 있으며, 넓은 부지 안에 여러 전시관이 나뉘어 있다. 본관, 동양관, 호류지보물관 등이 각각 역할을 나누고 있는데, 내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동양관’이었다.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은 일본 외 아시아 지역의 문화유산을 모아놓은 곳으로, 이곳 5층에는 ‘한반도’라는 이름의 섹션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도착하니, ‘(전) 한국 경상남도 출토’ 등의 이름이 적힌 유물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지역명과 함께 '~라고 전한다'는 의미의 전이 합법적으로 수집된 유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청동기 시대 유물부터, 불상, 공예품, 토기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있었고, 그중 상당수는 1920~30년대에 수집된 ‘오구라 컬렉션’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 유물들은 오구라 다케노스케라(小倉竹之助, 1870–1964)는 일본 수집가가 일제강점기 시절 한반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확보한 것들로, 대부분 식민지 시기 일본 본토로 옮겨진 것들이었다.
오구라 컬렉션
오구라 컬렉션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한국 문화재 수집으로 알려져 있다. 도쿄국립박물관에 남아 있는 한국 유물 중 상당수가 이 컬렉션에 속한다.
오구라가 약 30여 년간 수집한 유물의 수는 1,000점을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금관가야 유물부터 조선시대 공예품, 복식, 불교 조각,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이 가운데 일본의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것만도 39점에 달할 정도로 수준이 높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주도한 조선사 조사사업과 관련된 공식 발굴 유물이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부는 불법 매매나 도굴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금관총이나 연산동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이 오구라에게 흘러들어간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고 전한다.
1981년, 오구라의 후손은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하였고, 현재 동양관 내 한국 유물의 약 절반 이상이 이 컬렉션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체 전시 유물 241점 중 약 125점이 오구라 수집품이라고 한다.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가 수차례 반환을 요청했지만, 불법 취득 증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일본 측은 반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전시 방식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유물은 예술적 가치나 시대 구분 위주로 정리되어 있었지만, 수탈의 역사적 맥락이나 반출 경위에 대한 정보는 보이지 않았다.
일본 문화재는 세밀한 해설과 전시 기획을 통해 역사 서사를 만들어내는 데 비해, 한국 유물은 마치 기증품이나 장식물처럼 취급되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유물을 보는 내내 ‘왜 이 자리에 이 유물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수집된 유물 그 자체보다, 그것이 ‘전시되는 방식’이 문화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다른 나라의 문화재
한반도 유물 구역을 지나면 중국 유물 구역이 이어진다. 여기에는 오수전, 반량전, 한나라 시기 도자기, 청나라 청화백자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 관람객들은 유사한 동양 문화권으로서 이 문화재들도 자연스럽게 접하는 듯했지만, 중국 유물 역시 출처나 전래 경로에 대한 상세 설명은 없었다.
본관 쪽으로 이동하면 일본의 대표적인 문화재들이 등장한다. 사무라이 갑옷, 와상 형태의 불상, 일본 칼 등이 정리되어 있고, 전시는 훨씬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본 문화재 전시에는 맥락이 살아 있는 반면, 한국이나 중국 문화재는 일종의 ‘소장품’으로만 보이는 차이가 느껴졌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들른 호류지보물관은 건축미가 인상적이었지만, 내가 이번에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은 단연 동양관 5층이었다. 우리 유물을 눈으로 하나하나 오래 바라보며 기억에 담아두려 했기 때문이었을까.
박물관은 역사를 떠올리는 곳
이번 도쿄국립박물관 방문은 생각보다 기운이 많이 들었다. 조선의 문화재가 일본에서 어떻게 전시되고 있고, 그 속에서 어떤 해석이 빠져 있는 지를 생각을 곱씹었기 때문이다.
박물관이 그저 유물을 감상하는 공간이 아니라, 역사와 시대를 떠올릴 수 있는 장소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왜 그 유물들이 거기 있어야 했는지,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정리되어야 할지,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