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메이지신궁 방문기
메이지신궁은 도쿄 한복판, 하라주쿠에 있는 일본 근대사의 전환점이자, 메이지유신을 이끈 메이지 천황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이다.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도시 한가운데에 펼쳐진 울창한 숲, 그리고 한국의 식민지를 열었던 천황을 모신 공간이라는 사실은 한국인 여행자에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메이지신궁은 왜 특별한가?
1920년에 세워진 메이지신궁은 평범한 신사가 아니라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신궁'으로서의 위상을 지닌다. 일반 신사와 달리, 천황을 신격화하여 모시는 공간이며, 도쿄에 위치한 유일한 신궁이기도 하다.
메이지 천황과 쇼켄 황태후를 기리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은 10만 그루의 나무로 조성된 이 숲은, 그 자체로도 압도적인 위엄을 전한다.
천황을 신으로 여긴 일본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메이지 시대의 개혁은 일본인들에게 자긍심의 원천이 된다. 그 결과, 매년 1월 1일 수백만 명이 이곳을 찾아 '하츠모데(새해 첫 참배)'를 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걷는 길마다 역사와 마주하다
입구부터 본궁에 이르기까지 세 개의 도오리를 지나며, 메이지신궁의 규모와 위엄은 점차 실감할 수 있다.
참배길 옆에는 거대한 와인통과 일본 전통주가 장식처럼 놓여 있고, 수십 명이 동시에 지나도 될 만큼 넓은 길이 이어진다. 자연과 전통이 어우러진 이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차분해진다.
운이 좋다면 일본 전통 결혼식을 마주할 수도 있다. 실제로 신궁 내부에서 진행되는 결혼식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신성한 예식이며, 방문자에게는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남는다.
일본의 근대화, 그리고 한국인의 시선
메이지 천황은 단지 왕이기 때문에 성스럽게 받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막부 체제를 종식시키고, 일본을 근대화로 이끈 지도자였다.
메이지유신은 단기간에 일본 사회를 군사, 교육, 경제 등 여러 방면에서 완전히 개편했고, 이 변화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승리로 이어지며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서양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만들었기에 메이지 천황은 일본인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았다.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조선의 고종과는 극명히 다른 길을 걸었다. 한국인 방문자 입장에서 메이지신궁은 그저 일본스러운 신사일 뿐 아니라,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했던 두 나라의 역사적 대조를 상기시키는 장소다.
기억하고, 질문하게 되는 장소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이곳을 방문할 때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조선의 식민지화를 결정지은 시대를 이끈 인물을 기리는 신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불쾌한 감정만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본은 어떤 방식으로 자국의 역사를 기념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과거를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메이지신궁은 산책로로도 훌륭하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이곳은 단순한 도심 속 휴식처가 아니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직접 마주하는 공간이 된다. 천천히 걸으며, 한 시대를 만든 인물과 그 시대를 관통한 변화를 되새겨 보는 곳. 메이지신궁은 그런 여행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