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의 낮과 밤, 그리고 다시 만난 홍콩
마카오의 아침, 또 다른 얼굴을 보다
분명 어제 밤 마카오는 화려한 조명과 거대한 호텔, 카지노로 가득한 도시였다. 온통 번쩍이는 불빛 속에서 마카오는 눈부셨지만, 아침이 되자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마치 어젯밤의 마카오는 꿈처럼 지나가고, 이제야 이 도시의 진짜 표정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가이드 분이 “마카오의 밤은 화장한 얼굴, 낮은 민낯”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그 말처럼 화려함이 걷히자, 잔잔하고 따뜻한 기운이 도시 곳곳에 스며 있었다.
우리는 카지노 중심지에서 벗어나, 옛 마카오 시가지로 향했다.이곳의 첫 풍경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성바오로 성당 유적. 전면부 석조만이 남아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었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마카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포르투갈과 중국 문화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섬세한 조각, 아시아의 땅 위에 자리잡은 유럽 양식. 그 앞에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조용히 사진에 풍경을 담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도교 사원에서는 향 냄새가 은은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서양의 성당과 동양의 사원이 바로 옆에 나란히 있는 이 모습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조화로웠다.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나란히 존재하는 이 거리의 풍경은, 어제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인상 깊었다. 화려함보다는 차분함, 강렬함보다는 따뜻함이 느껴졌던 마카오의 아침이었다.
마카오박물관과 세나도 광장 산책
성당 뒷길을 따라 언덕 위로 오르면 마카오박물관이 나온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전시 내용이 알차게 구성되어 있어, 포르투갈 통치 시절부터 오늘날 마카오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다. 특히 유럽과 중국의 생활 양식이 전시 공간마다 어우러진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박물관을 둘러본 뒤에는 유명한 육포 가게와 자몽주스, 에그타르트까지 챙겨 맛보며 천천히 세나도 광장으로 이동했다.
빗방울이 흩뿌리는 날씨였지만, 곡선으로 이어지는 건물들의 파스텔톤 외벽과 바닥에 깔린 물결무늬 타일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점심은 포르투갈 요리 전문점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담백하게 조리된 해산물과 향신료의 조화가 색달랐다. 포만감보다도 낯선 풍미에서 오는 즐거움이 더 컸다.
거친 바다를 건너, 다시 도착한 홍콩
마카오와 작별을 고하고 페리를 타고 홍콩으로 향했다. 두 도시는 불과 65km 남짓 떨어져 있지만, 바다 위를 달리는 한 시간 남짓한 항해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아, 배멀미에 시달리는 일행이 예상보다 많았다. 출항 전부터 구토봉투를 손에 들고 긴장한 얼굴이 보였고, 항해 중간에는 누군가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그럼에도 페리가 도착하자 안도의 숨이 절로 나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홍콩은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더 빠르고, 더 높게 다가왔다. 마카오보다 훨씬 빽빽한 도시의 구조와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거리 곳곳의 간판이 다시금 ‘대도시 홍콩’을 실감하게 했다.
높은 빌딩, 좁은 방, 그리고 편안한 밤
몇 층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고, 로비에서 방까지 이동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문을 열자, 방은 예상보다 좁았지만 내부는 지금까지의 중국 숙소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깔끔하고 쾌적했다.
짐을 풀고 잠시 숨을 고르며 창밖을 바라보니, 고층 빌딩 사이로 홍콩의 밤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쉬는 것도 잠시, 우리는 곧바로 홍콩의 야시장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도심을 가로지르며 마주한 풍경은 활기로 가득했다. 거리에는 붉은 간판과 번쩍이는 조명이 끝없이 이어졌고,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각종 길거리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데 섞여 들려왔다.
옷, 가방, 장난감, 기념품까지 없는 것이 없었고, 눈에 띄는 물건마다 한 번씩 손에 쥐어보게 됐다. 흥정하는 소리,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 시식 권하는 목소리까지 모두가 ‘홍콩의 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떤 물건을 사야 할지 망설이다 결국 돌아섰지만,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꼭 넉넉한 여유를 갖고 천천히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 들고 돌아와 방 안에서 마카오에서 사온 육포를 꺼냈다. 조용한 방 안, 창밖의 불빛을 바라보며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 밤을 천천히 음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