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성 카이핑 조루와 마카오 여행기
카이핑의 독특한 문화유산, 조루(碉樓)
조루는 한국어로 ‘망루 형태의 다층 건축물’을 뜻하는데, 이 지역에서만 1,800여 채가 남아 있을 정도로 독특한 건축군을 이루고 있다. 2007년에는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건물들은 단순히 주택의 기능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해외에서 성공을 거둔 화교들이 귀향해 세운 조루는, 당시 불안정했던 치안 상황 속에서 주민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요새형 주거 공간이었다.
외부의 침입을 막고 내부에서 며칠 동안 자급자족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으며, 5~6층에 이르는 높이와 두터운 벽체가 방어 기능을 담당했다.
건축 양식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유럽식 발코니와 아치형 창문, 장식 기둥이 중국 전통의 목조건축 양식과 결합해 이국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었다.
평온한 농촌의 논밭 사이에 웅장하게 솟아 있는 조루의 풍경은, 한눈에 봐도 이 지역만의 특별한 장면이었다. 바로 이 독창적인 아름다움과 중국 현대사가 함께 조화를 이룬 독특함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이유라 할 수 있다.
카이핑 조루를 마지막으로 중국 본토에서의 공식 일정은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약 두 시간을 달려 국경을 넘어, 또 다른 매혹적인 세계인 마카오로 향했다.
마카오에 첫발을 내딛다
마카오에 입국하자마자 중국 본토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도로를 달리는 버스만 봐도 운전석이 반대에 있었고, 도시 전반의 시설은 훨씬 세련되어 보였다.
이 작은 도시가 오래전부터 ‘동양의 라스베이거스’라 불린 이유가 어렴풋이 와 닿았다. 거리의 간판, 건물 외벽, 네온사인조차 본토와는 결이 다른 공기를 풍기고 있었다.
첫 번째로 들른 곳은 마카오의 전통 거주 공간을 보여주는 마카오 주택박물관이었다. 이곳은 마카오 초대 총독의 거주 공간이 보존된 곳으로, 실제로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어 시간여행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활 도구와 가구, 창문 너머의 풍경까지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듯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마카오의 식민지적 역사와 생활 문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윈팰리스 호텔과 화려한 야경
이후 우리는 마카오의 현대적 상징인 윈팰리스 호텔을 찾았다. 최근 지어진 초대형 호텔답게 규모와 화려함이 압도적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눈부신 샹들리에와 정교하게 꾸며진 장식품들이 먼저 시선을 붙잡았다.
로비 한가운데 놓인 꽃 장식과 조명은 미술관과 정원을 합쳐 놓은 듯했고, 세세한 디테일에 공을 들인 인테리어는 보는 내내 감탄을 자아냈다. 화장실조차도 금으로 도배한 듯 화려해서 사진을 남기고 싶을 정도였다.
아쉽게도 그날은 비와 강한 바람 탓에 유명한 분수 쇼가 열리지 않았다. 음악에 맞춰 분수가 춤추는 장면을 꼭 보고 싶었지만, 날씨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쉬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게 남았다. 언젠가 다시 마카오를 찾는다면, 이번에 놓쳤던 순간까지 온전히 눈에 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
마카오의 상징 베네시안 리조트
밤이 깊어갈 무렵, 우리는 마카오의 상징 같은 베네시안 리조트를 찾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카지노 리조트답게 실내에 펼쳐진 베네치아 운하는 현실을 잠시 잊게 할 만큼 화려했다.인공 하늘 아래 흐르는 수로와 곤돌라, 유럽풍 건물과 화려한 조명이 어우러진 풍경은 마치 진짜 베니치아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매력에 푹 빠졌지만 순간 두려움도 느껴졌다. 낮인지 밤인지 구분되지 않는 인공 하늘과 끝없이 이어진 공간은 사람을 시간 감각에서 멀어지게 했다.
‘낮과 밤의 경계를 잊게 만든다’는 표현이 딱 맞는데, 동시에 그것이 이 도시의 찬란함이 가진 매혹이자, 카지노 문화의 무서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돌아보면, 마카오는 화려함 속에서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이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 풍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여행의 마무리
저녁은 마카오의 한식당 ‘홍대’에서 김치찌개로 해결했다. 평소 한국에서는 잘 먹지 않던 음식이었지만, 이날의 김치찌개는 이상할 만큼 맛있어서 밥을 한 공기 더 비웠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던지, 식탁 위에는 웃음소리와 함께 빈 그릇이 쌓여갔다. 식사 후에는 일행들과 함께 가볍게 2차를 가지며 마지막 밤을 즐겼다.
마카오에서의 하루는 짧았지만, 그 하루가 남긴 인상은 결코 짧지 않았다.
화려함 속에 숨겨진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도시, 그리고 낮과 밤이 끊임없이 뒤바뀌는 공간. 그것이 내게 남은 마카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