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후먼 여행기
호문포대, 아편전쟁의 현장
5월 14일 아침, 선전 숙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8시에 버스를 타고 후먼(虎門)으로 향했다. 중국 역사에 그리 밝지 않은 나에게도 익숙한 이름의 유적지가 있었는데, 바로 호문포대였다.
포대 옆에는 약 5km 길이의 호문대교가 자리 잡고 있었는데, 강을 가로지르는 그 웅장한 규모에 ‘역시 중국답다’라는 감탄이 나왔다.
포대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대포들이 줄지어 있었고, 이런 무기를 갖추고도 서양 함대에 패했다는 사실이 당시 중국의 자존심에 얼마나 큰 상처였을지 짐작이 갔다.
호문포대 옆 해전박물관에서는 아편전쟁을 비롯한 해전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지만 특별히 강렬하게 남는 전시물은 없었다.
곧바로 이동한 아편전쟁박물관에서는 임칙서가 아편을 몰수하고 소각했던 장소를 재현해 놓았는데, 중국어를 잘 몰라도 미니어처와 마네킹을 통해 당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임칙서의 결단과 그 시대의 긴박한 분위기가 전시 공간 전체에 묻어나 있었다.
황포군관학교
아쉽게도 내부는 공사 중이라 외관만 볼 수 있었지만, 주변 상점에서 부채를 흥정해 사고 시원한 코카콜라를 마신 기억이 남는다.
이후 황포고항으로 향하는 길은 전통시장 골목이었는데, 중국의 생활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항구는 생각보다 작았지만, 예전에는 광저우로 들어오는 모든 물자가 이곳을 통해 유입됐다는 설명을 들으니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다음으로 찾은 청평시장은 한약재로 유명하지만,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특유의 활기와 사람 냄새였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향이 가득한 이곳은 중국 현지의 삶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마지막 일정인 사면조계는 이번 하루 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조계지 시절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유럽 거리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고풍스러운 건물 속 스타벅스는 그 자체로 여행 명소였다.
조금 걸어가니 시원하게 트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는데, 이것이 사면조계만의 또 다른 매력이었다.
여담
숙소로 돌아가기 전 광저우 시내에서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밤거리를 걸으며 화려한 불빛과 사람들의 활기를 느꼈다.
KFC에서 치킨을 주문하다 ‘set’라는 영어마저 통하지 않는 직원과 한바탕 웃었고, 편의점에서 칭다오 맥주를 사 와 숙소에서 치킨과 함께 2차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역사와 문화, 현지의 일상을 한꺼번에 경험한 하루였고, 광저우와 후먼은 여행자의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닌 곳이었다.
여행정보
- 위치: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 및 둥관시 후먼 일대
- 주요 방문지: 호문포대, 해전박물관, 아편전쟁박물관, 황포군관학교, 황포고항, 청평시장, 사면조계
- 운영시간: 각 장소별 상이(박물관·군관학교는 보통 09:00~17:00, 사면조계·시장 등은 상시 개방)
- 입장료: 호문포대·박물관은 무료, 일부 전시관 소액 유료(10~20위안 내외)
- 가는 방법: 광저우 중심가 또는 선전에서 버스·택시 이용 가능. 후먼까지 약 1시간 30분 소요
- 추천 포인트: 아편전쟁 역사 현장, 독립운동의 숨결(황푸군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