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헌정기념관에서 전시 중인 안중근 의사의 총알은 한국 독립운동사와 일본 근대사를 가로지르는 상징적 유물이다.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계기로 떠난 여정에서, 작지만 거대한 이 총알은 한 시대의 무게를 응축하고 있다. 일본 국회의사당 인근 헌정기념관 특별전에서 볼 수 있으며,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의 교차된 역사가 이 공간 안에 고요히 새겨져 있다.
총알 앞에서 멈춘 걸음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읽은 뒤였다. 책장을 덮었을 때, 마지막 문장이 내 안에 오래 남았다. 칼보다 무거운 총알, 그것을 쥔 한 사람의 고요한 결심. 그렇게 나는 어느 날, 도쿄로 향했다. 관광이 아니라, 한 발의 총알을 보기 위해서였다.
도쿄 한복판, 국회의사당 옆 골목. 정돈된 수목과 얌전한 벤치들 사이로 헌정기념관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일본 근대 정치사의 박물관쯤으로 보였지만, 내 발걸음은 그 속에 있는 '하나의 사물'을 향해 있었다. 특별전의 이름은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 이름만으로도 일제 식민 통치의 근원을 환기시키는 두 인물이다.
전시장 구석, 유리 진열장 안. 그곳에 총알이 있었다. 크지도 않았고, 특별한 장식도 없었다. 작은 철 덩어리. 하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목숨과 한 민족의 결단이 함께 담겨 있었다. 수많은 전시물 사이에서도 유독 그 총알만은 나를 붙들었다. 안중근. 그는 이 작은 금속에 의지를 담았고, 그 의지는 백 년이 지나 이 낯선 도시의 한가운데서도 여전히 식지 않았다.
시대를 관통한 작은 총알 하나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최초의 총리였고, 메이지 헌법을 만든 장본인이며, 조선을 병합하기 위해 직접 통감으로 내려왔던 인물이다. 일본에서는 근대를 설계한 정치가로 존경받지만, 우리에게 그는 식민 지배의 시작점이었다. 그를 겨눈 안중근의 방아쇠에는 단순한 분노가 아닌, 격동의 시대를 향한 판단이 있었다.
그 판단의 산물인 총알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일본의 공적 공간 안에서 전시되고 있다. 그것은 분명 이상한 풍경이었다. 자신들의 지도자를 저격한 총알을 보존하고 공개한다는 것. 모순인지, 관용인지, 혹은 역사의 필연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배치 속에서 또 다른 침묵을 느꼈다. 역사는 늘 그런 방식으로, 사람의 생각을 흔들며 이어진다.
총알 앞에 서 있던 그 순간, 나는 마치 하얼빈역 플랫폼에 서 있는 듯한 감각에 빠졌다. 눈이 내리지도 않았고 총성이 울리지도 않았지만, 시간은 잠시 멈춘 듯 했다. 작지만 묵직한 그 쇳덩이 앞에서, 나는 안중근의 고요한 얼굴을 떠올렸다. 소설 속 묘사보다 더 또렷하게, 그 결심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었다.
- 위치: 일본 도쿄 지요다구 나가타초 1-1-1, 국회의사당 옆 헌정기념관 (憲政記念館)
- 운영시간: 월~금 10:00~17:00 (입장 마감 16:30, 토/일/공휴일 휴관)
- 입장료: 무료
- 가는 방법: 도쿄 메트로 \"나가타초역\" 1번 출구 또는 \"국회의사당앞역\" 2번 출구에서 도보 약 5분
- 홈페이지: 헌정기념관 공식 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