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객사문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관아문으로, 고려 말 공민왕 시기 혹은 태조 왕건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강릉대도호부 관아의 입구에 조용히 서 있는 이 문은 단출하지만, 수백 년의 역사를 껴안고 있다. 2016년 강릉 답사에서 이 문을 마주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고 남아 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관아문
강릉역에서 내려 천천히 걸었다. 목적지가 있는 산책이란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강릉대도호부 관아를 향했다. 그 앞에 ‘문’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 고려의 문. 책에서 본 그 문은 낡고 단출했지만, 그 안에 깃든 시간만큼은 단단했다.
용강동의 낮은 길들을 지나 골목으로 접어들자, 담장 뒤로 목조 건물이 보였다. 관아는 복원된 단청 건물들로 구성돼 있었고, 그 중심에 문이 하나 서 있었다. ‘강릉객사문’. 공식 명칭은 ‘임영관 삼문’이라지만, 예전 이름이 더 마음에 들었다. 훨씬 직관적이고, 설명 없이도 제 역할을 다하는 이름이었다.
문은 낮고 소박했다. 위엄 있는 관아문이라기엔 담백했고, 가까이 다가가 손바닥을 얹고 나서야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목재는 닳아 있었고, 기둥 아래엔 빗물이 스며든 흔적이 까맣게 남아 있었다. 살아남은 것들은 조용했고, 그래서 강했다.
이곳은 고려 시대 강릉대도호부가 설치되었던 자리. 지금으로 치면 강원도청 같은 관아의 정문이었다. 600년 넘는 시간을, 이 조용한 입구가 지켜온 것이다. 안쪽에는 560년이 넘은 보호수도 있었다. 햇살을 피해 그 그늘에 서자, 땅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발끝에 닿았다.
강릉객사문의 건립 시기와 고려 말 역사적 맥락
이 문이 정확히 언제 세워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민왕이 친필로 썼다는 ‘임영관’ 현판이 전해지기에 그 시기를 고려 말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1366년, 공민왕이 강릉에 머무르며 이 현판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임영지』에 남아 있다. 왕이 외적과 내란 속에서 이곳에 머물렀고, 그 문 위에 현판을 걸었다.
또 다른 설은 936년, 태조 왕건 시기다. 같은 『임영지』에 따르면 임영관 자체가 그 무렵 건립됐다고 한다. 기록은 분분하지만 문은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무너지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렀다. 현판은 지금 건물 안에 따로 보관되어 있지만, 옛 사진 속에선 분명히 이 문 위에 걸려 있었다.
나는 공민왕이라는 이름에 오래 시선을 두었다. 반원 개혁, 전민변정도감 설치, 기철 숙청, 홍건적의 침입. 혼란의 시대 속에서 중심을 지키려 했던 사람과, 그 시대에 세워졌거나 혹은 그 흔적을 품은 문. 역사는 책 속이 아니라, 문지방의 마모와 기둥 아래 바랜 흔적에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쳤지만, 나는 알았다. 그 문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고려의 관아문. 지금도 열려 있는, 역사의 입구였다.
-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임영로131번길 6
- 운영시간: 매일 09:00 ~ 18:00
- 입장료: 무료
- 가는 방법: 강릉역에서 도보 20분 또는 시내버스 이용
- 홈페이지: https://www.gn.go.kr/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