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계보2 - 미추왕 가계도로 알아보는 석씨 왕조와 김씨 왕조

👑 한국사 가계도 시리즈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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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라 초기 왕위는 박 씨, 석 씨, 김 씨 세 성씨가 한 번씩 번갈아 가며 계승했다는 통념과 달리, 실제로는 박 씨, 석 씨, 김 씨가 교차되는 과도기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주도권이 넘어갔다.*1 특히 김 씨의 첫 왕인 미추 이사금은 석 씨 왕조 시기에 사위 자격으로 즉위했다. 미추 이사금의 즉위는 신라 초기 왕위 계승의 복잡한 양상과 사위 계승의 특징을 보여준다. 김 씨는 오랜 기간 왕비족의 역할을 수행한 뒤에야 왕위를 계승했다.

2. 배경

신라 건국 초기의 왕위는 박 씨 성을 가진 군주들이 독점했다. 신라 1대 혁거세 거서간부터 8대 아달라 이사금에 이르는 기간, 왕위는 사실상 박 씨 세력의 영향 아래 놓였다. 이 시기 박 씨 왕이 7명, 석 씨 왕이 1명이었다.

이후 신라 왕위는 석 씨 성을 가진 군주들이 다수 계승하는 형태로 변모했다. 이는 신라가 여러 부족을 기반으로 형성된 사회였음을 보여주는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세 신화와 관련이 깊다. 그러나 김 씨 세력은 초기 왕조에서 주로 왕비족 역할을 수행했다. 김 씨 출신 왕비는 초반부터 다수 등장했으나*2, 김 씨 성을 가진 왕은 13대 미추 이사금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3. 전개

3.1. 박 씨 왕조에서 석 씨 왕조로의 전환

신라 초기 왕위 계승은 박 씨가 우위를 점하다가 석 씨로 넘어가는 양상을 보였다. 탈해 이사금(석탈해)은 박 씨 왕의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올랐다.*3 탈해 이사금의 즉위는 박씨로 아어지던 신라 왕실에 타 성씨가 유입되어 왕위를 계승하는 첫 사례였다. 탈해 이사금의 직계 자손이 곧바로 왕위를 잇지는 못했지만, 석 씨 세력이 왕실의 주요 구성원이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신라의 왕위는 석 씨 왕조가 주도했다.

3.2. 김 씨 세력의 성장과 왕비족 역할

김 씨 세력은 신라 초기부터 강력한 부족 집단 중 하나였다. 그러나 김 씨는 왕위를 직접 계승하기보다는 왕비족으로서 왕실과 연계를 강화했다. 김 씨 여성은 박 씨와 석 씨 왕들의 왕비가 되며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이는 김 씨가 왕권의 직접적인 경쟁자보다는 신라 왕실의 안정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김 씨가 왕비족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과정은 훗날 김 씨 왕조가 성립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3.3. 미추 이사금의 즉위와 왕위 계승의 변화

미추 이사금(미추왕)은 김 씨 성을 가진 신라의 첫 왕이다.*4 미추 이사금은 11대 조분 이사금의 사위였다. 조분 이사금은 석 씨 왕조의 군주였다. 미추 이사금이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오르면서 신라의 왕위 계승 방식은 또 한 번 변화했다.

이전의 석탈해 이사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위 계승은 직계 자손이 곧바로 왕위를 잇지 못하는 특징을 보인다.*5 미추 이사금의 즉위 직후, 김 씨의 직계가 곧바로 왕위를 계승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추 이사금의 즉위는 김 씨 세력이 왕위에 오를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건이다.

4. 결과 및 평가

신라의 왕위 계승은 세 성씨가 공평하게 번갈아 가며 왕위를 계승한 것이 아니다. 신라의 왕위는 박 씨, 석 씨, 김 씨 순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형성했다. 석탈해나 미추왕의 사례는 왕실의 유력 세력이 사위 자격으로 왕위에 오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사위로서 왕위에 오른 군주들은 직계 자손이 바로 다음 왕위를 잇지 못하는 패턴을 보였다.

그러나 석탈해 이사금은 석 씨 왕조의 시작을 알렸고, 미추 이사금은 김 씨 왕조가 성립할 수 있는 물꼬를 텄다. 신라 역사에서 미추 이사금은 김 씨 최초의 왕으로서 후대의 김 씨 왕조가 번성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오늘날에도 경주 대릉원 구역에서는 미추 이사금의 왕릉을 특정*6하여 제사를 모시고 있는데 신라 역사에서 미추왕의 역사적 중요성을 드러낸다.  신라가 박, 석, 김 세 개의 왕성을 가진 특이한 국가였다는 점은 그 복잡한 초기 정치사를 반영한다.
  1. *1 흔히 '박➔석➔김' 순서대로 평화롭게 턴제 게임을 돌렸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박(1~3) ➔ 석(4) ➔ 박(5~8) ➔ 석(9~12) ➔ 김(13) ➔ 석(14~16) ➔ 김(17~) 순의 복잡한 계보였다.

    특히 8대 아달라 이사금 이후 박씨는 신라 하대 53대 신덕왕 때까지 700년 넘게 왕위를 되찾지 못하는 기나긴 암흑기를 거친다.
  2. *2 5대 파사 이사금의 비인 사성부인(허루 갈문왕의 딸)과 6대 지마 이사금의 비인 애장부인(마제 갈문왕의 딸)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김씨 세력이 왕위를 배출하기 이전부터 이미 핵심 귀족층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3. *3 석탈해는 2대 남해 차차웅의 사위가 되어 대보(大輔)라는 최고 관직을 지냈고, 3대 유리 이사금의 유언에 따라 4대 왕으로 즉위했다.

    이는 토착 세력(박씨)이 외부 세력(석씨)을 포섭하며 연맹 국가로 덩치를 키워나가는 고대 정치사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4. *4 미추 이사금은 김알지의 6세손이자 갈문왕 구도의 아들로, 11대 조분 이사금의 딸 광명부인과 혼인하였다. 조분 이사금의 사위라는 명분과 당시 김씨 세력의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 맞물려 13대 왕으로 추대되었다.
  5. *5 사위가 즉위한 후 그 아들이 바로 왕위를 잇지 못한 것은, 아직 특정 가문에 의한 왕위 독점 상속이 확립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4대 탈해왕 사후 5대 파사왕(박씨), 13대 미추왕 사후 14대 유례왕(석씨)이 즉위한 것은 연맹장 성격이 강했던 초기 신라의 한계를 보여준다.
  6. *6 경주 대릉원에 위치한 미추왕릉(사적)은 내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지석(묘지명) 등 100% 확실한 고고학적 물증이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 그리고 오랜 세월 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사실을 바탕으로 미추왕의 능으로 비정(比定)하고 있다.

    특히 이서국이 쳐들어와 신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귀에 댓잎을 꽂은 기이한 군사들이 나타나 적을 물리치고 능으로 사라졌다는 '죽엽군(竹葉軍)' 설화가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섣불리 확인해 보겠다고 곡괭이를 댔다간 전설속의 죽엽군에게 혼쭐이 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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