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의병 키워드 정리
을사의병(乙巳義兵)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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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 박탈 → 국권 피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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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저항: 을사오적(이완용·박제순·이근택·이지용·권중현)에 대한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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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자·유생 주도: 자발적 항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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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칭: 1906년 활발 → 병오의병(丙午義兵)이라고도 함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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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 봉기 확산 (1905년 말 ~ 19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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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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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식·안병찬: 홍주의병, 홍주성 점령(1906) → 을사의병 최대 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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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전북 태인 무성서원에서 거병, 일본에 압송 → 쓰시마 섬에서 단식 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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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 평민 출신, 유격전술·규율 엄격, 동해안 일대 활약 → ‘평민 의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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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직·정용기 부자: 산남의진, 영남 최대 규모 의진, 꾸준히 항일전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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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자발적 봉기, 외세(일본) + 을사오적 처단 목표
치즈의 포인트 🧀
- 포인트1 → 을사늑약 직후 봉기
- 포인트2 → 최익현(유생, 쓰시마 섬에서 단식 순국), 신돌석(평민 의병장 등장)
- 포인트3 → 정미의병(1907)으로 계승
- 을사의병은 한국 근대사 무장 독립운동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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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 세력: 유생·유학자 중심, 점차 평민 참여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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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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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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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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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권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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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일본군에 비해 압도적인 전력차, 산발적 거병, 일본군·진위대의 진압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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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무장투쟁 본격화: 을미의병 이후 전국적 재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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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확대: 신돌석 등 평민 의병장 등장 → 의병 운동의 사회적 기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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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 1907년 정미의병, 1908~09년 13도창의군으로 발전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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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1905), 을사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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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의병(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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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식(홍주의병), 최익현(단식 순국), 신돌석(평민 의병장), 산남의진(정환직·정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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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생 중심 + 평민 참여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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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 의병 운동 본격화, 항일 무장투쟁 시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