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계보 시리즈
시대/파트별로 빠르게 이동
펼치기 / 접기
조선왕조계보 시리즈
시대/파트별로 빠르게 이동
밀풍군 이탄, 소현세자 가계도 정리하기
조선 후기, 정통성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이 있다. 소현세자의 증손자, 바로밀풍군 이탄이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당시 밀풍군은 왕으로 추대되었고, 이후 자진 명을 받고 목숨을 끊었다.
밀풍군은 왕이 될 뜻이 없었지만, 그 존재 자체가 조선 왕실 내부의 가장 민감한 문제를 건드렸다.
영조의 정통성과 밀풍군의 존재
조선에서 왕위 계승은 출신 배경이 민감한 쟁점이 되곤 했다. 영조에게는 특히 그랬다. 그는 숙종의 서자로, 어머니는 궁녀 중에서도 가장 하급 신분인 무수리 출신 숙빈 최씨였다.
이런 출신은 당시 정국을 주도하던 소론에게 계속해서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경종을 지지하던 소론은 영조의 정통성에 강하게 의문을 제기했고, 이 긴장감은 결국 1728년 이인좌의 난으로 폭발하게 된다.
소론이 왕위의 대안으로 주목한 인물은 밀풍군 이탄이었다. 밀풍군은 인조의 장자인 소현세자의 손자로, 경종과 같은 항렬에 속했다.
숙종 대에 소현세자 계열이 복권되면서 밀풍군 역시 왕실 내부에서 높은 예우를 받았고, 청나라에 사은 정사로 다녀올 만큼 신뢰도 또한 높았다. 조용하고 신중한 성품 역시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대안으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이인좌의 난 속 밀풍군의 의미
소론 세력은 밀풍군 이탄을 정통성 있는 대안으로 내세우며 왕으로 추대했다. 이는 영조의 출신을 정면으로 겨냥한 정치적 의도였다.
무수리 출신 어머니를 둔 영조가 아닌, 소현세자의 직계 후손인 밀풍군 이탄이야말로 정통성 있는 계승자라는 주장을 통해, 왕위 계승의 근본을 다시 묻고자 했다.
이런 주장은 명분 쌓기가 아니라, 영조의 약점을 조롱하고 흔들려는 정교한 프레임이기도 했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장자였고, 그의 죽음 이후 직계 후손들은 줄곧 정치 무대에서 배제되어 왔다. 밀풍군 이탄은 바로 그 계통의 적장자였고, 소론은 그 정통성을 내세워 반란의 명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밀풍군(이탄)은 이인좌의 반란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지만, 추대 대상이 되면서 결국 '자진' 명을 받게 되었다. 영조는 처음에는 자진 명령을 내리기를 주저했으며, 몇 차례 논의 끝에 명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밀풍군 이탄을 성급히 처형할 경우, 오히려 영조가 정통성 콤플렉스에 얽매여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소론이 짜놓은 정통성 프레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영조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대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