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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8~11대 국무위원회 주석
김구
金九 | Kim Koo
| 출생 | 1876년 8월 29일 |
|---|---|
| 사망 | 1949년 6월 26일 |
| 본관 | 구 안동 김씨(舊 安東 金氏) |
| 호 | 백범(白凡) *1 |
| 부모 |
부 김순영(1848~1901) 모 곽낙원(1859~1939) *2 |
| 배우자 |
최여옥(첫 번째 부인) 최준례(재혼)*3 |
| 자녀 |
아들 김인, 김신*4
딸 김화정, 김은경 등 |
| 주요 독립운동 |
동학농민운동 가담, 치하포 의거 사건 이후 투옥, 을미의병 활동을 거쳐
상하이로 망명.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내무총장·국무령·주석 등을 역임하며 임정의 실질적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
| 정당·단체 |
한국독립당
대한민국 임시정부
한국국민당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대표 저작 | 『백범일지』*5 |
김구의 생애
이어지는 내용은 더미 데이터로 사실과 다를 수 있음. 백범 김구는 조선 말기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동학농민운동과 의병 활동, 치하포 의거 등을 거치며 점차 체계적인 항일 독립운동가로 성장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한 뒤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합류해 내무총장·국무령·주석 등을 지내며 임정의 상징적 지도자가 되었다.
김구의 투쟁
그는 무장투쟁과 외교전을 병행하면서도, 해방 후에는 분단을 막기 위해 남북 협상을 시도하는 등 ‘완전한 독립과 통일 국가’라는 목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개인의 정치적 이익보다 민족 전체의 미래를 우선시했던 선택들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도덕적 기준점이자, 해방 정국이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다는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출발점으로 남아 있다.
역사적 평가
무장투쟁과 임시정부 중심 노선을 대표하는 지도자로, ‘도덕적 정통성’을 상징하는 독립운동가로 기억된다. 동시에 해방 정국에서 현실 정치 세력과 타협하지 못해 영향력이 제한되었다는 비판도 함께 존재한다.
- *1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스스로를 특별한 영웅이 아닌 민중과 같은 위치에 두고자 할 때 즐겨 사용한 호이다.
- *2 곽낙원은 이후 상하이 임시정부 시기까지 아들의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며 ‘애국 어머니’ 상징으로 회자된다.
- *3 첫째 부인 최여옥과의 사이에서 슬하 3남 1녀를 두었으나, 생활고와 투옥·망명 생활이 길어지며 사실상 별거 상태가 되었다. 이후 최준례와 재혼하여 가정을 유지하였다.
- *4 특히 차남 김신은 대한민국 공군 창설 멤버이자 공군참모총장·국토통일원 장관을 지내며 부친의 항일·통일 노선을 계승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5 자전적 회고록 형식으로, 어린 시절부터 독립운동·임시정부 활동, 해방 후 정국에 대한 생각까지를 담고 있어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1차 사료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